“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보라! 그것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서로 교차해 생각지도 못했던 프로젝트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강사: 박종우 사진가

2010동강국제사진제를 공식 후원하고, 매년 행사 기간에 맞춰 출사 이벤트를 진행해 온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주)(대표, 강동환 www.canon-ci.co.kr)는 지난해 촬영과 교육, 전시로 구성된 이벤트를 개최해 뜻 깊은 자리를 가졌다. 특히, 2010동강국제사진제가 개막한 다음날인 지난해 7월24일, 동강사진박물관 소회의실에서는 국내 저명한 사진가와 사진애호가들이 마주하고 심도 있는 사진 이야기를 나눈 캐논디지털포럼이 열렸다. 2010캐논디지털포럼에는 2010동강국제사진제 수상자인 강용석 사진가와 다큐멘터리 작가로 명성이 높은 박종우 사진가가 초청되었다. 2명의 작가 모두 국내외 다큐멘터리 사진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터라 2010캐논디지털포럼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에 본보에선 박종우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다큐멘터리 사진 바로 보기’를 소개한다. 국내외 곳곳을 다니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박종우 사진가의 작품을 통해 진정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느껴보자. - 편집자 주 -

▲ 박종우 사진가

박종우 사진가의 사진 인생
보도사진으로 사진을 시작했다. 신문기자로 신문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데스크의 명령에 따라 촬영 장소가 정해졌다. 서울 시내를 스케치하는 것은 예사고, 화재 진화 현장이나 국회를 촬영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에서 촬영한 사진은 주로 회의 전경이나 의원들의 모습, 본 회의장 풍경 등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사진들은 이미 선배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특히, 당 총수들이 악수하는 사진은 사람의 크기가 정확하게 같게 하는 것이 통상적인 촬영법이다. 그러다 보니 20~30명의 사진기자들은 중간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몸싸움을 한다. 한번은 새로운 시도를 하기위해 사람들의 뒤에서 뒷모습이 나오는 사진을 찍어 제출했지만 그 사진은 쓰이지 않았다.
이런 숱한 과정을 거치면서 보도사진에 대한 염증을 느껴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현재는 스틸사진과 동영상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믄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작업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사진적 표현에 한계가 있을 때 동영상이 큰 보완 역할을 한다.
흔히 사람들은 내게 해외에서 주로 촬영하는 이유를 묻는다. 한국보다 외국이 좋아서가 결코 아니다. 어릴 적에 ‘먼 훗날 촬영하기 어려운 작업을 젊어서 먼저 하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해외에 자주 나가게 되었고, 파리나 뉴욕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보다 사진이 점점 더 좋아질 만한 결과물이 나오는 오지로 향하게 된 것이다.

DMZ 작업을 통해 주제 및 소재 찾기
사진을 막 시작한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보면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런 고민들은 아마추어 뿐 아니라 프로 작가 역시 빈번하다. 아마도 이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보다 앞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들의 촬영 과정을 참고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내가 2009년 가을부터 촬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예로 들어보자.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DMZ를 촬영해서 비슷한 사진은 많다. 더욱이 주변에서 DMZ를 일컬어 야생동물의 천국, 희귀 동식물이 많은 한국의 세렝게티라고 말해서 촬영 전만해도 소재가 다양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막상 DMZ에 도착해보니 촬영할 소재가 마땅히 없었다. 군사지역에서 적의 기습은 낮보다 밤에 은밀히 진행되어 군인들은 낮에는 취침하고 밤에 주로 활동한다. 하지만 사진가에게는 야간 촬영이 허가되지 않는다. DMZ에서 무엇을 촬영할 것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생태계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군인들의 생활을 촬영할 것인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한동안 보이는 대로 촬영했다. 전쟁, 아픔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전적비를 촬영하고 싶었지만 이미 강용석 작가가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어떤 주제를 설정하더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소재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DMZ는 한반도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철조망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한국전쟁의 비극과 분단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철조망은 형태가 단순해서 촬영했을 때 재미가 없지만, 디자인 측면에선 매력적인 소재다. 이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철조망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민통선 부근에는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못한 촌스러운 표어와 구조물이 많다. 촌스럽지만 오늘날의 분단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것을 모아 시리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이런 소재가 처음부터 눈에 띈 것은 아니다. 3~4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촬영하다보니 우리 분단의 현실을 알려주는 하나의 아이콘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용치(드레곤스 티스(Dragon’s Teeth))가 눈에 들어왔다. 용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정사각형이나 피라미드 형태의 방어 시설이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탱크 진입을 방어하기 위해 길목마다 설치된 것이다.
소재를 찾게 되면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표현력도 좋아진다. 한 가지 주제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제일 먼저 모든 것을 찍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내가 DMZ에서 소재를 발견했던 것처럼 한참 촬영하다보면 소재가 보이게 될 것이다.
또 카테고리별로 정리도 해보자. 예를 들어 꽃을 촬영한다면 컬러나 형태 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다. 카테고리를 정리하다보면 나에게 맞는 것을 찾을 수 있다. 꽃은 이미 많은 사진가들이 촬영한 주제다. 하지만 그들의 꽃 사진 역시 특별하지 않다. 다만 접근하는 방법이 사진마다 다를 뿐이다. 자신만의 사진적 접근 방법으로 촬영해보는 것이 좋다.


▲ 2010동강국제사진제에서 열린 캐논디지털포럼에서 박종우 사진가의 강의를 듣고 있는 캐논 유저들

자신만의 프로젝트 만들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보자. 무언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다. 2010동강국제사진제를 방문했다면 동강워크숍을 듣는 수강생의 모습, 전시를 보는 이들의 반응을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유럽을 여행할 때, 일주일 정도 쇼윈도우의 모습을 촬영한 적이 있다. 또 베를린에서 자전거를 주제로 하루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 서로 교차해 전에 생각해보지 않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진을 촬영하면서 나만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찾아 촬영해보라. 그럼, 사진 생활이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

박종우 사진가

한국일보 사진기자를 거쳐 ‘뉴욕타임즈’, ‘LA타임즈’ 등 해외 유명 매체에 사진을 기고했으며, 현재 사진과 동영상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문화에 대한 사진을 주로 촬영하며, ‘최후의 샹그릴라’,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사향지로’, ‘바다집시’ 등의 다큐멘터리 영상물과 20년간 작업한 히말라야 사진을 한데 묶어 ‘히말라야’를 출간한 바 있다.


정리 / 이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