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국내 프로사진현상소에는 약 150 여 대의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가 가동되고 있지만, 불경기 탓에 노후 장비 교체 수요는 꽁꽁 얼어붙은 실정 -

대형 은염 프로랩 출력기 하나면 프로 사진현상소의 모든 출력 작업을 문제없이 처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화 및 사진 상품이 다변화되고 소비자들의 니즈가 다양해진 요즘, 은염 프로랩 출력 장비는 점점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물론 품질과 생산성 면에선 사진 출력기 가운데 은염 출력장비가 여전히 으뜸이지만 다양한 사진 상품을 공급하는 데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인쇄계가 ‘포토북’이라는 신개념의 앨범을 앞세워 사진시장에 진입하고 있어 과거 대형 은염 프로랩 출력기를 이용해 출력 및 앨범 사업을 영위하던 프로 사진현상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또 품질과 생산성, 다양성 면에서 은염 프로랩 시장을 위협하는 디지털 프레스가 이러한 양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대형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를 국내 공급하는 메이커들과 실 사용자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변화에 편승해 과감히 투자를 할 것인가, 소극적인 자세로 시장의 안정화를 기다려야 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은염 프로 사진현상소 운영자들과 장비 공급업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은염 수준의 사진 품질을 구현하는 캐논의 잉크젯 방식 상업용 HD 포토프린터 ‘드림라보 5000’

▲ 한국HP가 국내 공급하는 디지털 프레스 ‘HP인디고 7600’

▲ 마이크로큐닉스(주)가 올 하반기에 국내 출시하는 미국 ZBE 사의 대형 출력기 ‘Pro랩’

▲ (주)유닉스포토가 국내 공급하는 폴리의 20인치 양면 출력 프로랩 ‘레이저랩 DS50㎝/20″’

과거 폴리일레트로니카(Polielettronica 이하, 폴리), ZBE, 더스트(Dust), 그레탁(Gretag), 코닥(Kodak)은 생산성과 출력 크기, 품질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대형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 메이커들이었다. 그러나 올 초 20인치급 신제품을 출시한 폴리와 ZBE를 제외하고, 지난 4~5년 사이 대형 은염 프로랩 부문에서 신제품을 내놓은 업체는 드물다. 또 이 사이 신규 장비가 설치된 사례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더스트의 쎄타(Theta)와 람다(Lambda)의 국내 공급 및 서비스를 총괄하는 마이크로큐닉스(주)의 송정수 이사는 “근래 이뤄지는 장비 거래는 중고 제품을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대형 은염 프로랩 시장 규모는 약 150여 대. 이마저도 광고 출력용 은염 프로랩 50여 곳을 뺀 웨딩 및 베이비 스튜디오와 거래하는 순수 프로 사진현상소는 100여 곳이 전부다. 그러나 잉크젯 출력기의 고급화로 스튜디오의 자가 출력량이 늘고, 인쇄업체들이 포토북 및 포토앨범 사업에 진출하면서 얼마 되지 않는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의 구동 시간도 큰 폭으로 감소하는 실정이다. 더스트의 쎄타와 ZBE의 크로미라 장비를 사용하는 진주 동광칼라의 성상우 대표는 “사진 출력량의 감소로 신규 출력장비 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라며, “기존에 있던 출력 장비를 잘 관리해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온양 서부칼라현상소처럼 HP 인디고 디지털 프레스를 도입해 새로운 수익 모델을 개척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 사진현상소의 사정은 넉넉지 못하다.
은염 출력 장비 메이커들이 수익성을 고려해 후속 신제품 공급을 멈추고 있어 은염 프로 사진현상소들은 구입한지 10년이 넘은 노후 장비를 소모성 부품만 교체해 근근이 사용하는 형편이다. 국내 프로 사진현상소에서 사용하는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의 평균 수명은 6~7년. 하지만, 은염 디지털 프로랩 출력장비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 대 후반에 설치된 장비는 그 수명이 15년이 넘은 것도 있다. 출력 크기가 작은 소형 은염 미니랩 장비가 그러하듯 프로랩 출력장비도 광원에 따라 LED와 레이저 타입으로 나뉜다. LED 광원은 레이저 타입에 비해 수명이 길고, 유지 보수비도 적게 들어 경제적이다.
또한 초창기 LED 제품의 단점으로 지적되던 레이저 장비에 비해 낮은 생산성도 어느 정도 해결되어 LED 프로랩 출력장비의 인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다. LED 타입의 은염 프로랩 출력기에는 코닥LED, 쎄타 76HS를 제외하고 쎄타50, 폴리, 라이트젯, 람다 시리즈, 크로미라, 그레탁 시리즈 등 대부분의 프로랩 출력기 메이커들이 레이저를 주 광원으로 채용했다.
레이저 타입의 프로랩 출력기를 사용하는 프로사진현상소는 연간 1천만 원 대의 유지 보수비를 감수해야 한다. 서비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애프터서비스를 1년 단위로 계약하고 매월 그 비용을 납부하고 있다. 그 금액은 대략 월 70~90만 원대로, 부품 비용은 별도다. 대구 중앙칼라의 이광기 이사는 “레이저 타입의 폴리는 2~3년에 한 번씩 R·G·B 총 3개의 레이저 광원을 교체하는데, 그 비용이 3천만 원을 상회한다”며, “적잖은 유지 보수비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주문량과 수익성, 생산성, 품질을 두루 살펴볼 때 이만한 장비도 없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또 약품 관리와 디지털 프레스보다 낮은 소모품 경쟁력도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프로 사진현상소 운영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폴리 장비를 가장 먼저 도입한 온양 서부칼라현상소의 김세중 전무는 “품질을 배제하고 같은 크기의 사진을 출력한다고 가정할 때 HP 인디고와 폴리의 생산단가는 HP 인디고가 40% 가량 저렴하다”며, “지금까지 소모품이나 부품 공급에 대한 불편은 전혀 없었지만 사회적 분위기를 볼 때 향후 약품 사용 제한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따라서 일부 프로 사진현상소에선 이미 고품질의 디지털 프레스를 도입해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HP 인디고를 도입한 서부칼라현상소와 후지제록스의 ‘다큐컬러 1450’ 상업 인쇄기를 사용하는 동광칼라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로 사진현상소는 주 거래처가 사진 품질을 중시하는 웨딩 및 베이비 스튜디오에 한정되어 있어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의 비중이 무엇보다 크며, 은염 프로랩 출력기 대체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업용 디지털 인쇄기의 품질을 의심하는 사람도 적잖다. 코닥LED와 쎄타 76HS를 사용하는 서울 스카라칼라의 임철순 대표는 “고가의 상업용 디지털 인쇄기는 시안용이지 보관용 사진을 출력하는데는 부족함이 많다”고 말한다. 또 상업용 인쇄기를 사용하는 동광칼라 성상우 대표도 “애프터서비스나 소모품 경쟁력 면에서 인쇄 장비가 은염 장비를 앞서지만 사진시장에서 요구하는 품질을 고려하면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는 아직 유효하다”고 전했다.
이상과 같은 인식이 프로 사진현상소에 팽배해서인지 종전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 공급사들이 최근 과감히 신규 장비를 국내 출시하고 나섰다. 이태리 폴리 社의 레이저랩(Laser Lab) 한국 수입원인 (주)유닉스포토(www.unix photo.co.kr)는 올 초 신제품 ‘레이저랩 DS50㎝/20″’를 정식 출시했다. 이 제품은 최대 20인치의 양면 출력이 가능한 프로랩 출력장비로, 1시간당 4백 매까지 출력하는 높은 생산성과 해상도 610dpi의 고품질을 실현했다. 가격은 이전 제품과 비슷한 수준인 2억7천만 원대다. 마이크로큐닉스(주)도 국내 최초로 미국 ZBE의 대형 출력기 2종을 올 하반기에 국내 공급한다. 1억원 중·후반 대의 Pro랩과 SE랩 모두 수명이 반영구적인 LED 방식이다. 사진 현상소에 적합한 ZBE의 SE랩은 10~30인치 롤지를 매거진 없이 바로 장착할 수 있으며, 가로 커팅이 가능하다. 또 분당 출력 속도가 61㎝, 해상도는 300dpi로 기존 프로랩 장비보다 그 성능이 우수하다. 이와 함께 ZBE의 Pro랩은 SE랩의 성능에 세로 커팅과 백프린팅 기능을 추가했다. 마이크로큐닉스(주)의 송정수 이사는 “중고 장비로 교체를 생각하는 프로 사진현상소라면 품질보증기간이 5년으로 매우 안정적인 ZBE의 신상품 도입을 고려해볼만하다”고 전했다.
10년 전, 은염 프로랩 가격은 평균 2억 원대 중반으로 브랜드와 사양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저 1억 원 이상, 최고 3억 원대에 공급된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프로 사진현상소들이 앞 다퉈 대형 은염 프로랩 출력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만 해도 수익성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대구 중앙칼라의 이광기 이사는 “현재 11×14인치 사진 한 장을 출력하는데 평균 3천 원대 후반이다”라며, “물가는 오르는데 사진 가격만 역행해 수익성이 낮아지니 장비 교체의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사진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상당 부분 인쇄 쪽으로 편향됐던 앨범 주문량이 최근 정통 사진시장으로 회기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하고 있다. 대구 중앙칼라의 이광기 이사는 “인쇄시장으로 넘어갔던 앨범 주문이 사진시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며, “제작이 간편하고, 스타일이 세련되어 새로운 것에 주목하는 소비심리를 초반에 자극했지만, 결국 소비자는 사진다운 품질을 요구하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취재 / 김치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