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신디 셔먼의 ‘Untitle # 96’이 약 42억 원에 팔려 -

사진은 예술과 발명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그러나 미술 분야의 작가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진가 역시 단순한 기록보다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이제 사진은 예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사진의 위상은 각종 경매에서 거래되는 작품 가격에서도 엿볼 수 있다. 회화나 조각 등 미술품이 주를 이루던 경매시장에서 사진은 2000년대 이후부터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5월,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신디 셔먼의 ‘Untitle # 96’은 무려 ＄3,890,500(약 42억 원)에 낙찰됐다. 같은 날 판매된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엔디워홀의 ‘Self-portrait’(＄38,442,500)에 비해 낮은 가격이지만 사진이 미술 작품과 견줄만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가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이제는 예술의 범주를 넘어 독립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사진의 높아진 위상을 고가에 거래된 작품을 통해 살펴본다. - 편집자 주 -

신디 셔먼, ‘Untitle # 96’ - ＄3,890,500(약 42억 원)

셀프 포트레이트, 구성 사진가로 알려진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 사진작가다. 영화 배우나 그림 속의 인물과 동일한 분장으로 연출한 사진으로 유명하다. 여배우로 분장한 <무제 사진 스틸>부터 패션모델을 패러디한 <패션 사진>, 애브젝트 아트(Abject Art)라는 신체와 관련된 분비물을 촬영한 사진 등 그는 끊임없이 여성과 그 신체를 다루고 있다. 지난 5월 크리스티에서 ＄3,890,500(약 42억 원)에 판매된 ‘Untitle # 96’은 실물 크기의 풀 컬러 사진이다. 포르노 책을 보다 영감을 얻어 촬영한 이 사진은 1981년 작품으로, 부엌에서 누워 자신을 촬영한 셀프 포트레이트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99 CentⅡ Diptychon’ - ＄3,346,456(약 36억 원)

2007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3,346,456(약 36억 원)에 낙찰되어 최근 신디 셔먼의 ‘Untitle # 96’이 판매되기 전까지 최고가를 기록했다. 독일 출신 안드레아스 거스키(Andreas Gursky)의 작품으로, 99센트 대형 마트에서 수 만 가지의 상품들이 빼곡히 들어 찬 모습을 촬영했다. 산업화가 이룬 건물이나 대량 생산 소비의 현대 사회를 표현한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파노라마 사진으로 유명하다. 유형학적 사진의 대표 주자인 베허 학파를 잇는 사진가로, 세계적인 스타 사진가 중 한 명이다. 무수한 반복과 배치를 통해 인공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그는 “대량 생산과 소비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를 표현하고자 이 사진을 찍었다”며, “99센트 마트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Georgia O'Keeffe (Hands)과 Georgia O'Keeffe Nude’- ＄1,470,000(약 15억 원), ＄1,360,000(약 14억 원)

20세기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사진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는 사진 분리파를 창립해 완벽한 구도와 구성의 사진을 완성했다. 두 장의 사진 중 Georgia O'Keeffe (Hands)는 2006년 뉴욕 소더비에서 ＄1,470,000(약 15억 원)에 낙찰되었고, Georgia O'Keeffe Nude도 같은 경매에서 ＄1,360,000(약 14억 원)에 판매됐다. 여류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를 뉴욕 화단에 데뷔시킨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는 그를 모델로 3백여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 두 장의 사진은 두 사람이 연인이었을 때 촬영한 손과 누드 사진이다.

에드워드 스타이겐, ‘The Pond Moonlight’- ＄2,928,000(약 31억 원)

지난 2006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2,928,000(약 31억 원)에 거래된 작품이다. 1904년 작품으로, 필름이 분실되어 전 세계적으로 단 3장만 보존되고 있다. 나머지 2장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보관되었으며, 나머지 1장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소유하고 있다. 에드워드 스타이겐은 <인간가족>전을 기획한 사진 기획자로도 유명하다. 이 사진은 Charles Caffin에서 촬영되었으며, 수평선 위에 나타난 달의 일부분이 연못을 비추고 있다.

에드워드 웨스턴, ‘Nude’ -＄1,609,000(약 17억 원)

근대 사진에 큰 영향을 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의 1925년 작품으로, 2008년 뉴욕의 소더비에서 ＄1,609,000(약 17억 원)에 판매됐다. 치밀한 세부 묘사를 이용한 직물사진을 추구한 그는 사진가 최초로 구겐하임상을 수상했다. 안셀 애덤스와 함께 스트레이트 사진의 새 장르를 열었다. 그의 사진 대부분은 에디션이 붙어 있지 않아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Pyeongyang Ⅳ’-＄3,012,364(약 32억 원)

2010년 10월 영국 소더비의 프리즈 위크 경매에서 전화 응찰자에 의해 130만 파운드에 팔린 작품이다. 북한의 아리랑 공연을 주제로 촬영했다. 또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는 ＄3,012,364(약 32억 원)에 낙찰된 바 있다. 전형적인 안드레아스 거스키 스타일의 사진으로, 지난 2007년에 촬영됐다. 김일성을 기리는 약 5만여 명의 참가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했다.

작자 미상, ‘Billy the Kid’- ＄2,300,000(약 25억 원)
이 작품 역시 올 6월 미국 덴버의 Lebel's Old West Show & Aucti on에서 옥스바운 카본의 창업주인 윌리엄 코크에게 ＄2,300,000 (약 25억 원)에 낙찰된 사진이다. 미국 서부의 최고 총잡이이자 무법자인 빌리 더 키드를 촬영한 사진으로, 그의 유일한 실물 사진이다. 그는 총 21명을 살해했으며, 링컨 카운티 전쟁에서 총잡이로 활동했다. 빌리 더 키드가 뉴멕시코주에서 25센트를 주고 촬영한 사진으로 촬영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Kremlin of Tobolsk’-＄1,750,000(약 19억 원)

지난해 러시아의 상트레테르부르크 자선 경매에서 ＄1,750,000(약 19억 원)에 낙찰된 사진이다. 러시아의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가 촬영한 작품이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평소 사진에 조예가 깊었던 그가 2009년 크렘린궁을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자선 경매와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 고가에 경매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리차드 프린스, ‘Untitled(Cowboy)’-＄1,248,000(약 13억 원)

1989년 사진으로, 2005년 11월 크리스티 뉴욕 옥션에서 ＄1,248,000(약 13억 원)에 거래됐다. 미국의 화가이자 사진가인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나 사진을 가져와 자신의 작품으로 만드는 리포토그래피(Rephotography) 장르를 개척한 장본인이다. 이 사진은 말보로 담배 광고의 이미지를 재촬영했다. 즉, 말보로가 고용한 사진가의 사진을 리차드 프린스가 다시 찍은 것이다.

이외에도 리차든 아베돈의 ‘Dovima with elephants'(1955)가 2010년 파리 크리스티 옥션에서 $1,151,976(약 12억 원)에 낙찰되었으며, 에드워드 웨스턴의 ‘Nautilus’ (1927)가 2010년 소더비에서 $1,082,500(약 11억 원), 피터 릭(Peter Lik)의 ‘One’(2010)이 $1,000,000(약 10억 원)에 판매됐다.
고가에 거래된 대다수 사진들은 희소가치가 높거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이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처럼 고가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물론, 현재 거액에 거래되고 있는 사진만으로 사진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술 딜러이자 LA MoCA 현대미술관의 관장인 제프리 다이치(Jeffrey Deitch)가 ‘경매에서의 낙찰 가격은 지나칠 정도로 작가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고가에 팔린 사진 작품은 해당 작가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을 고착시키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취재 / 이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