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분단 상황의 내면화에 진지하게 접근 -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42세)이 제11회 동강사진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전쟁과 다툼이 야기한 한국 분단의 내면화에 오랜 시간을 바친 그는 현실의 냉철한 접근 방식과 더불어 미학적 완성도 또한 높게 평가받는 고집스러운 사진가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차례의 해외 전시와 한 번의 국내 전시를 통해 노순택만의 내면적 사고를 다양한 사진적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동강사진상 수상을 기념해 오는 7월에는 2012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또 한 차례의 기념비적인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올해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만 10년째를 맞으며 고유의 사진 범주 안에서 특유의 아우라를 구축해나가고 있는 노순택 사진가를 만났다. - 편집자 주 -

▲ 제11회 동강사진상 수상자, 노순택 사진가

우선, 2012 동강사진상 수상을 축하드리며 수상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저에게 동강사진상은 과분한 상입니다. 제가 주목해왔던 선배들의 자취가 배어있는 상이죠. 하지만 상이라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습니다.”

2012 동강국제사진제에서 사진전과 세미나를 통해 관람객들과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사진전 구성과 세미나의 주요 내용이 궁금합니다.
“동강국제사진제에서는 3개의 시리즈를 전시할 계획입니다. ‘얄읏한 공’, ‘좋은 살인’, ‘붉은 틀’이 그것입니다. 모두 분단 한국이 생산한 기묘한 사회적 풍경을 담고 있는 작업입니다. 그 중 ‘붉은 틀’은 2007년에 발표한 작업에 머물지 않고, 최근 벌어진 연평도 포격이나 의문의 천안함 침몰 사건을 포함해 살아 꿈틀대는 분단 풍경으로 엮을 계획입니다. 이 3개의 시리즈를 묶어 <실성한 성실>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2010년 고은미술관에서 했던 개인전 <성실한 실성>의 변주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의 분단은 얼마나 성실한 것이며, 고로 실성한 것입니까. 한편, 동강사진워크숍에선 ‘사진이라는 털’이란 제목으로 짧은 이야기를 합니다. 사진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겁니다.”

최근 학고재에서 열린 <망각기계>展은 어떤 전시며, 이를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전달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망각기계> 작업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배경으로 합니다. ‘광주라는 배경 위의 우리’가 아니라, ‘우리라는 배경 속의 광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는 인간에게 부여된 가장 오래된 사명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나누는 기준이 ‘기록의 여부’이니까요. 기록과 기억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반드시 서로를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호응하지도 않습니다. 둘은 비슷해 보일뿐, 다르죠.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기록은 가치중립의 탈을 쓸 수 있되, 기억은 가치중립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기억이란 어떤 은유가 아닐까 싶어요. 명료함을 추구하지만 사실 모호한 것이고, 게다가 주술적이기도 합니다. 망각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기억은 망각을 저주하고, 망각 역시 기억을 지우려 들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서로를 요청하고 결투와 화해를 반복합니다. 여기서 기록은 늘 기억의 편을 드는 것만도 아니고, 때로는 망각의 편에 섬으로써 배반의 심판자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월 광주의 오늘’에 관한 이 작업으로 항쟁을 기억하자거나, 망각을 반성하자는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억은 선이요, 망각은 악이라거나, 그 반대를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오늘의 한국 사회라는 시공간에서 오월의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억과 망각이 어떤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 노순택 사진가는 지난 5월4일부터 6월10일까지 학고재갤러리에서 기억과 망각이 혼재된 사회를 시사한 ‘망각기계’ 사진전을 개최했다.

▲ 오는 7월20일부터 10월1일까지 강원도 영월에서 열리는 2012 동강국제사진제에서 동강사진상 수상자전 ‘실성한 성실’이 열린다. 전작 ‘얄읏한 공’, ‘좋은 살인’, ‘붉은 틀’ 시리즈와 연평도 포격, 천안함 침몰 사건을 엮어 한국의 분단 풍경을 보여 줄 계획이다.(사진은 동강사진상 수장자전 포스터 이미지로 노순택 사진가의 ‘배후설 : 메가바이트 산성의 비밀#089’)

이번 사진전의 준비 기간이 상당히 길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사진전의 준비 기간이 상당했던 게 아니라, 이 작업 자체의 기간이 짧지 않았습니다. 6년여 동안 광주를 오가며 진행했던 작업이니까요. 집중해서 딱 마무리하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많은 책과 자료를 접할 수 있었고, 생각의 늪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좋은 작업 방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느슨해지거나 지치기 쉬운 방식이니까요. 물리적인 ‘사진 작업’ 보다 심리적인 ‘생각 작업’이 더 많았던 작업입니다. 허나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위험한 법이죠.”

노 작가님의 작품은 사실 전달 위주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담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슈와 사건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고민 속에 빠져 지내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작업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가 꽃에 이끌리는데 대단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정치는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대자연을 거부할 수 없듯,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정치는 거부할 수 없는 ‘무엇’이지요. 풀 한 포기가 자연스럽듯, 정치 또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풀 한 포기의 메커니즘을 알면 그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 수 있고, 정치 또한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을 판단하는 준거는 무엇일까요. 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돌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인간이 무엇인지, 왜 갈등이 벌어지는지, 그러한 갈등의 장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는지, 갈등의 장면과 그 장면의 (사진적) 재현이 드러내는 간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자주 생각합니다. 나인 것과 내가 아닌 것, 사진인 것과 사진이 아닌 것,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람 세상의 풍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사람 사는 풍경에 이념이 있고, 갈등이, 격렬한 투쟁이, 호소가, 가끔은 화해가 있는 겁니다. 물론 ‘장면’이 발생하죠. 저는 그걸 카메라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장면의 ‘표면’을 인화지로 옮겨내는 사람이죠. 표면을 보여주지만, 따라서 내면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내면을 생각토록 촉구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적인 방법으로.”

작업 주제를 선정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는지요? 또 준비 중인 작업이 있다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궁금한가, 안 궁금한가가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최근에 준비 중인 작업은 ‘사진에 관한’ 작업입니다. 늘 생각해 왔고, 생각 중인 일이죠.”

추구하는 사진적 언어에 따라 그 표현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나요?
“장면의 속살에 대해 늘 생각하지만, 저는 결국 ‘표면’을 다루는 사람입니다. 조형성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건, 약간의 거리를 두건, 조형성 자체에 대해 늘 생각하죠. 컬러를 거부하거나, 흑백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긴장감 있는 프레임 워크를 구사할 때도 있고, 심심한 프레임 워크를 구사할 때도 있습니다. 무엇이 이 장면에 맞는 것인지 늘 확신하지 못하지만, 늘 고민은 하지요. 확신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 자신에게 최면을 겁니다.”

향후 작품 활동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나 사진사적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나요?
“개인적으로도, 사진사적으로 꼭 이루고 싶은 게 없습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사진을 해야 한다면, 사진이란 정말이지 ‘뭔가를 이루기엔’ 부적절한 매체거든요. 사진이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자잘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누군가 제게 기대하고 있다면, 그 기대를 배반하는 것이야말로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사실은 그게 어려운 일이죠.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진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진은 ‘대상의 존적’입니다. 홀로 사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죠. 내가 의존했던 대상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만 하는 작업입니다. 그것이 사진을 쉽고도 어렵게 합니다.”

인터뷰 / 김치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