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고 즐기는 마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꽃 향기가 영혼을 기름지게 하고 좋은 사진을 만들어 냅니다”

- 꽃의 외형을 탐닉하기 전에 그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훌륭한 꽃 사진 촬영의 지름길 -

‘한 우물만 파라’란 말이 있다. 고집스럽게 한 곳만 바라 보고 정진하면 언젠가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얘기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고 반열에 오른 사람을 흔히 달인, 고수, 명장이라고 부른다. 특히, 장르가 확연히 구분되는 사진계에서는 작가의 성향에 따라 한 가지 주제만 고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본보에 소개하는 꽃 사진의 고수, 김정명 사진가도 20여 년 동안 꽃 사진에만 매달려 온 숨은 고수 중 한 명이다. 비록 사진이나 꽃에 대한 전문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꽃 분야만큼은 그 누구보다 열정과 관심을 갖고 있는 김정명 사진가에게 꽃과 사진에 대한 그만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야생화 사진 전문가 김정명 사진가

야생화 소재의 다양한 주제 찾기
꽃을 위해서라면 백두에서 한라까지 김정명 사진가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꽃 사진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꽃이 피는 곳이라면 그 어떤 험한 곳이라도 달려가는 그다. 그렇게 한 우물을 고집스럽게 판 지 20여 년. 그의 이름 석자 앞에는 ‘야생화 사진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김정명 사진가는 TV,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야생화 사진에 대한 기고를 도맡고 있다. 특히, 지난 1995년부터 제작해 온 야생화 작품집 및 달력인 ‘한국의 야생화’는 지난해로 17집이 발행되었으며, 그 방대한 정보는 그 어느 박물관 못지않다.
“그동안 매년 야생화에 대해 각기 다른 주제를 갖고 주 단위로 52~53개 정도의 사진을 담고 있습니다. 4~5년을 주기로 새로운 주제를 선택해 촬영을 시작합니다. 매번 야생화 주제를 달리 구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연구를 지속하다보니 이제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김정명 사진가는 희귀종 또는 멸종 위기의 식물, 한국의 야생난, 한국 특산 식물, 수생 식물, 양용 식물, 자외선 촬영, 해외 야생화 등 식물도감에서 조차 찾아보기 힘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룬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고정 팬들은 별도의 홍보가 없어도 매년 발행되는 그의 사진집을 구입한다.
야생화를 향한 그의 집념은 동강할미꽃에 그대로 묻어 있다. 새로운 야생화를 찾기 위해 사방팔방을 누비던 지난 1997년, 김정명 사진가는 새로운 야생화 종을 발견하는데, 그것이 바로 허리를 곧게 펴고 있는 동강할미꽃이었다. 일반적인 할미꽃은 허리를 숙이고 있어 그 머리가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할미꽃은 태양을 향한 채 꽃잎을 활짝 열고 있다. 학계에 보고된 바 없던 그 할미꽃은 김정명 사진가에 의해 ‘동강할미꽃’이라는 학명을 얻었고, 그는 정선의 명예군민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그의 강인한 집념에서 비롯된 결과다.

위험한 곳에서 피는 꽃일수록 아름답다
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올려 지는 것이 색(色)이다. 강렬하거나 화려한 꽃의 색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뇌리에 강하게 각인된다. 그러나 그런 꽃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야생화 사진 전문가 김정명은 ‘위험한 곳에서 피는 꽃일수록 아름답다’고 말한다.
“절벽에 피어나는 꽃은 색상이나 모양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지한 식물은 종족번식을 위해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화려한 색으로 치장합니다. 그 꽃의 향기 또한 향기롭고 강렬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차도 옆에 피어난 꽃 역시 강인한 습성을 타고 납니다.”
김정명 사진가는 ‘꽃의 모양을 볼 때 디자인을 유념해 보라’고 설명한다. 꽃은 수학 공식인 피보나치 수열에 맞춰 잎사귀가 배열된다. 피보나치 수열은 1,2,3,5,8,13…과 같이 선행하는 숫자 두 개의 합이 다음의 수가 되는 것으로, 일명 황금분할이라고도 한다. 자연에서 피어나는 꽃은 피보나치 수열에 기초하며, 그 대칭과 대비는 정확하다.
“한국의 야생화는 디자인이 수려합니다. 야생화의 디자인은 인간이 창조하는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사물을 관찰할 때도 너무 외견만 따지지 말고 그 안에 아름다움을 탐구해야 합니다.”
사진애호가들은 계절에 맞는 꽃을 촬영하기 위해 삼삼오오 꽃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그들이 훑고 간 꽃밭은 훼손되고 고귀한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꽃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김정명 사진가에게 이러한 모습은 매우 가슴 아픈 현실이다.
“자연은 연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을 줍니다. 예쁜 꽃을 촬영하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오히려 그 아름다운 꽃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꽃 사진은 연출되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서 감동을 찾아야 합니다.”


▲ 김정명 사진가가 촬영한 야생화

우리나라 야생화는 향기가 강해
꽃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카메라 같은 장비의 성능에 달렸을까?, 촬영 기술에 큰 영향을 받을까?, 아니면 꽃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할까?… 김정명 사진가는 무엇보다 ‘꽃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을 으뜸으로 꼽는다.
“우리나라 야생화는 외국 꽃에 비해 색이 강렬하지 않고, 크기가 작아서 발견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족번식을 위한 꽃가루받이를 할 시기가 되면 매우 강렬한 향기를 발산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이 왜 향기를 발생시키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꽃을 진정으로 즐기기보다는 단순히 외형에 끌려 겉모습만 탐닉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꽃의 본질을 즐기다보면 꽃에 비춰지는 빛의 방향을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최상의 꽃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꽃 사진을 위해 같은 곳을 몇 번이고 찾아가는 열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꽃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다. 가슴에서부터 우러나는 즐거움이야 말로 꽃 사진을 촬영하는데 가장 필요한 첫 조건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야생화는 숨박꼭질하듯 꼭꼭 숨어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야생화는 1년 중 단 일주동안만 피기 때문에 인내심과 뚝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년간의 경험과 섬세한 관심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꽃들은 영하 20도에서 영상 20도 사이의 온도를 견디기 때문에 그 어떤 나라의 꽃보다 유전인자가 강하다. 이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이야 말로 진정한 미(美)라 할 수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한국의 야생화는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꽃들은 기온이 변하면 죽지만 한국 야생화 중에는 스스로 발열을 해 차가운 얼음 속에서도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조차 이런 야생화의 습성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꽃 사진에 대한 실력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꽃 사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김정명 사진가는 기본에 충실하라고 말한다.
“꽃이 부각되기 위해서는 배경 처리가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자신과 카메라의 시선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사진의 기본이 되는 배경 처리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는 것이 꽃 사진의 기본입니다.”
또 김정명 사진가는 처음부터 너무 책만 보지 말 것을 권유한다. 책을 통해 단순한 정보를 습득할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꽃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 즐길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꽃의 향기가 영혼을 기름지게 해 좋은 사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야생화 전문가 김정명 사진가의 지론이다.

취재 / 이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