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부터 16개국 한국전쟁 참전 군인과 그 유족을 기록하는 이병용 사진가를 만나다 -

북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연일 비상식적인 언행과 도발을 불사하는 군사적 위협을 감행하고 있다. 연초부터 3차 핵실험을 강행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킨 북한은 남북의 평화와 화해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을 전격 폐쇄하고, 최근엔 사흘 연속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동해상에 발사하는 등 무력시위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3주년, 피 묻은 남과 북의 한민족이 휴전을 선언한지 6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지만 이러한 북한의 도발은 언제든지 한반도에 또 다시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현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63년 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한국전쟁은 남과 북을 통틀어 150만 명의 사망자와 부상자 360만 명을 기록한 근대 한국 역사의 뼈아픈 기억이다. 특히, 전 세계 16개국에서 파병된 수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의 목숨이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는데 희생되었지만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지금, 이와 같은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지난 2007년부터 유엔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의 사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작지만 진심어린 보은(報恩)을 실천하는 사진가 이병용의 행보는 한국전쟁 발발 63주년을 목전에 둔 지금 의미가 더욱 크다. - 편집자 주 -


▲ 유엔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을 기록하는 이병용 사진가

유엔 한국전쟁 참전 군인 다시금 바라보기

지난 2008년 세상에 공개된 ‘1비르의 훈장’ 사진전은 유엔 한국전쟁 파병국 16개국 중 에티오피아를 다녀 온 이병용 사진가의 첫 번째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이는 에티오피아 아디스바바 시내의 코리아빌리지에 모여 살고 있는 한국전 참전 군인과 그 유족에 관한 기록물이다. 또 이병용은 2007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대한민국의 형제의 나라, 터키를 사진에 담았다. 한국전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의 사진을 든 노파, 낡은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 그들의 대를 이어 살아가는 손자·손녀들, 하나 같이 가난하고 낡은 우리네 전후 직전을 보듯 비루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엔 참전 군인을 하나의 나라로만 기억하죠. 나라를 기억할 뿐 16개국 젊은이들의 목숨 하나하나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전쟁의 고통을 이겨낸 우리만 생각할 뿐 그들에게도 부인이 있고, 그 후손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가보다는 개개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길 바랄 뿐입니다.”
이처럼 이병용은 ‘국민들이 참전 군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명을 잃고 한줌의 재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간 참전 군인들의 넋을 기리자는 의미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생명을 건진 참전 군인과 그들의 유족을 기록하는 내내 이병용 사진가의 눈은 마를 날이 없다.
“터키의 한 오지 마을에서 만난 노파의 얼굴은 돌 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 있었어요. 할머니는 18살에 시집와서 2주 만에 한국전에 참전한 남편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남편과 영영 재회할 수 없었죠. 60년을 넘게 홀로 살아 온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 있던 날, 주름 깊게 패인 얼굴로 번지는 눈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유년시절의 아련한 기억이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기록하게 된 발로
“사람들은 제가 왜 유엔 참전 군인을 기록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몸도 고되고, 돈도 되지 않는 일을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단 거예요. 하지만 사람마다 생각이나 삶의 방식이 다르듯, 저에게 이번 프로젝트는 그 어떤 것보다 의미 있고 애착이가는 작업입니다.”
이병용은 늦은 나이에 사진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8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진을 시작한 것이다.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년 만에 일본어 공부를 끝내고, 동경공예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남보다 늦은 30대에 새로운 공부를 하려니 곱절은 더 열심히 해야 했어요. 입학할 당시에는 좋은 성적이 아니었지만 그 후에는 줄곧 장학금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졸업식 때 학과 대표로 졸업장을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귀국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포기해야만 했죠. 지금도 무척 아쉽습니다(웃음).”
한국으로 돌아 온 그는 고향인 춘천을 시작으로 자신의 과거 흔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져 주문진, 강릉, 청계천도 그의 작업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어린 시절에 봤던 것이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청계천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복원되는 과정, 청계천 재건 모습까지 빠짐없이 기록했습니다. 그때 촬영한 사진 11점이 서울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병용의 작품 활동은 지난 2006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 소재의 작업실이 침수되면서 카메라를 비롯해 필름, 인화지 등 촬영 장비 일체와 그동안 작업했던 사진이 모두 훼손된 것이다. 바로 그때 인천 월미도 재향군인회에서 해외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의 한국 재방문 사업 소식을 듣게 된다.
“중요한 작업 문서들이 물난리로 소실되었어요. 가슴이 너무 아팠죠. 하지만 이러한 고통의 순간이 오히려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작업했던 종군 위안부부터 재개발 지역의 기록 등 그동안의 작업이 ‘역사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만나면서 마음속에만 있던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확신이 섰습니다. 지금 이 프로젝트를 할 운명이었는지 어린 시절 춘천에 방문했던 에티오피아의 하일라 셀라시 황제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지요.”
이병용은 한국전쟁이 시작된 강원도 춘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에티오피아와 자매결연을 맺은 춘천에는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유년 시절의 아련한 기억, 에티오피아와의 만남이 유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기록하게 된 발로가 된 것이다.
이병용의 계획은 장대하다. 2007년부터 10년 동안 에티오피아,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미국, 콜롬비아, 태국 등 16개국의 유엔 파병국을 기록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대한 사진 프로젝트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부는 책임을 다른 부서로 미루기에 바빴고, 지인들마저 60년도 훨씬 지난 일을 왜 작업하냐며 핀잔주기 일쑤였다. 느리지만 혼자의 힘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2007년 2월, 에티오피아에서 첫 여정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미리 습득한 정보들이 현지에선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시내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참전용사기념회관, 코리아빌리지를 매일 아침마다 찾아 갔습니다. 5일 정도 지나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죠. ‘사진을 찍기 위해 왔으면서 왜 촬영하지 않느냐’, ‘무엇을 촬영하고 싶냐’ 등 서서히 마음을 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병용은 참전 군인뿐 아니라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큰 감동을 받았다. 전쟁의 상흔이 뭔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매일 같이 그를 반겼다. 그는 마치 아이들 틈바구니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듯 했다고 회상한다. 굶주리고 힘든 삶이지만 그 안에도 웃음이 있고,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껏 사진을 해오면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돈보다 더 큰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제 손을 꼭 잡고 따라다니던 아이의 온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 이병용 사진가는 지난 2007년,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유엔 한국전쟁 참전국 16개 국을 기록 중이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유엔 참전 군인들의 기록은 ‘우리의 역사를 찾는 작업’

이병용 사진가의 유엔 한국전쟁 참전 군인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본 곳보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그래서 이병용 사진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 중이다.
“현재 캐나다 레지던스를 신청하고 대기 중입니다. 결과가 좋다면 캐나다를 시작으로 미국, 콜롬비아에서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레지던스 승인이 나지 않아도 내년에는 반드시 캐나다와 미국에서 유엔 참전용사들을 만나 작업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한편, 이병용 사진가는 한국전 참전 군인들과 더불어 우리의 역사를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고려인, 입양아, 해외교포 등 역사의 한 자락에서 파생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사견일지 모르지만 한국전쟁부터 한국의 현대사는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미국의 완력이 개입되었지만 대한민국 스스로가 겪고 극복한 고난이 바로 한국전쟁이기 때문이지요. 이를 통해 발생한 모든 부산물의 기록을 앞으로 해야 할 과제입니다.”
이병용 사진가는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유엔 참전 군인들의 기록이 끝나면 나라별로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또 나라별로 촬영한 사진을 사진집으로도 발간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이병용 사진가의 작업은 분명 그에게 벅차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를 하나 둘씩 현실로 이끄는 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발산하는 그의 열정과 노력 때문이다.

취재 / 이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