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통해 하나의 존재와 마주하며 시선을 교감하고 싶습니다”

- 사진·여행·만남 … 고빈 사진가가 사진을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
‘낯선 여행 그리고 동물들’, ‘양의 초상’, ‘너는 나에게로 와서’, ‘만나게 될거야’ 등 수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단체전을 통해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해 온 고빈 사진가는 마음에 평온을 전해주는 사진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인도,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등지를 여행하며 작업한 그는 타인과 마주함이 없는 고독한 현대인들의 병폐를 순수한 인도 사람이나 동물들로부터 들춰낸다. 그리고 그가 인도에서 찾은 해법이란 것도 늘 작품과 함께 제시된다. 이에 본보는 고빈 사진가를 만나 사진을 통해 진정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솔직담백하게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 고빈 사진가

동물,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수도

“티베트 오지의 어느 외딴 사원에 잠시 머물렀을 때의 일입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려 밖을 내다보니, 염소 한 마리가 잠시 들어가도 되겠냐는 듯 얼굴을 내밀더군요. 그 표정이 마치 사람과도 같았습니다.”
외지에서 온 낯선 방문객에 대한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 고빈 사진가의 문을 두드린 것은 비단 염소만이 아니었다. 우두머리격인 염소를 앞세워 그 뒤에는 당나귀와 개 여럿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방문을 열어주자 한 마리씩 들어오더니 고빈 사진가의 짐 가방부터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 일 이후 고빈 사진가의 사진에는 유독 동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인물사진일지라도 그 옆에는 새나 고양이, 개, 염소 같은 동물이 함께 자리하고, 풍경 사진 속에도 동물이 빠지지 않는다.
동물이 단독으로 주인공을 차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빈 사진가가 이렇게 동물 사진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여행객을 향해 잔뜩 목을 뺀 염소들, 꼬마 주인들 앞에서 늠름하게 포즈를 취하는 개, 기분 좋게 마실을 다니는 오리, 사색에 잠긴 하얀 소 등 고빈 사진가의 사진 속 동물들은 사람 못지않게 감정이 풍부하다. 오히려 렌즈를 향해 무어라 말을 거는 듯하다.
“사람과 교감하며 사는 동물들은 겉만 동물의 모습이지, 영혼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동물을 찍을 때도 인물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표정과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인도, 그가 해법을 찾은 곳
고빈 사진가의 사진 작업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네팔, 티베트 지역을 여행하며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여름에는 히말라야의 카슈미르 지역을, 겨울에는 인도 라자스탄의 사막 지역을 주로 찾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은 아니다. 단지 여행을 통해 작업을 할 뿐이다.
“여행은 여러모로 에너지를 줍니다.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이처럼 호기심이 발동해서 계속 여행을 다니는 것 같습니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한 그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마음의 고향으로 회귀하듯 인도 지역에 발길이 머물 때가 많다고 한다. 고빈 사진가가 이 지역을 자주 찾는 이유는 아마 카메라를 향해 마음을 열어주는 동물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는 10여 차례나 방문한 곳도 있는데, 그곳에서 고빈 사진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동물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의 동물들은 인간을 향해 잔뜩 경계심을 품고 도망가기 바쁘지만, 신기하게도 이 지역 동물들은 카메라와 이방인에게 마음껏 호기심을 드러내며, 오히려 카메라를 좋아하기까지 한다고 하니 이상하기만 하다.
“이는 힌두교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힌두교인들은 카르마를 만들지 않기 위해 동물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와 완전히 다릅니다. 다른 나라의 동물들은 산업화 속에서 인간에게 삶의 공간을 빼앗기고 있는데, 인도는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역이며, 여전히 삶의 여유가 남아 있습니다.”


존재와 마주함은 시선의 공유
고빈 사진가의 사진 속 인물에선 동물과 마찬가지로 호의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어느 지역에서나 한 계절을 보내다보면 낯선 이방인에 대한 마음의 빗장이 풀리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그 즈음 슬며시 든다. 특히, 그의 사진 속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동의를 얻든 얻지 않았든 고빈 사진가의 사진 속에서 훔쳐보는 시선이란 없다. 이는 고빈 사진가 스스로 피사체와 시선을 주고받으며 교감을 나누기를 원하기 때문. 고빈 사진가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와 마주하고 교감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것이 고빈 사진가가 사진 속에 담으려는 메시지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 기기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며 대화할 일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인도 시장에서는 가격을 흥정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는데, 편의점에서는 바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가격이 뜨기 때문에 대화할 일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존재와의 마주침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매우 외롭고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시선이 마주하는 사진을 찍는 이유는 그 어떤 존재라도 마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빈 사진가는 가능하면 피사체가 밝은 빛을 낼 때 셔터를 누른다. 같은 피사체라도 슬픈 상황과 기쁜 상황으로 나뉘는데, 대상 자체가 갖고 있는 고유의 파장이 이미지를 통해 보는 이에게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진은 힐링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밝은 모습을 찍으려고 애씁니다.”






▲ 고빈 사진가가 인도, 파키스탄, 네팔, 티베트 지역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작품.

한국에서 새로운 모티브 찾고 싶어
고빈 사진가가 말하는 치유의 사진들은 지난 2월, ‘만나게 될거야’라는 포토에세이로 출간됐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인도에서의 기록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속에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순진무구한 동물들의 선한 표정을 바라보고 있자면 모든 악의가 누그러지니, 이는 사진이 갖고 있는 놀라운 힘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고빈 사진가가 바라는 인도 작업의 연장선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국내에 잠시 머물 때도 그의 마음은 인도의 어딘가를 늘 헤매고 있다. 그러다 고빈 사진가는 어느 순간, 국내에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국내에서는 인도와 같은 방법이 맞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나라에 맞는 다른 형태의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인데, 이미지가 갖고 있는 파장력과 전달력에서 해답을 찾으려 합니다. 이제 마음이 좀 홀가분해진 상태라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동안 고빈 사진가는 전시와 강의를 하며 국내에서 지낼 생각이다. 방향이 잡히는 대로 한국에서의 새로운 작업도 시작될 예정이다. 하지만 타고난 노마드(Nomad, 유랑자) 기질은 그를 또 어딘가로 향하게 할지도 모른다.
“버스를 작업실로 개조해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버스를 타고 중국부터 국경을 넘어갈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가는 거죠. 평소 무거운 장비 때문에 이동에 한계가 있었는데 버스를 이용하면 이동과 주거, 작업이 한꺼번에 해결될 것 같아 생각해 낸 아이디어입니다. 이렇게 버스(이동식 작업실)를 타고 다니며 1~2년 정도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취재 / 박영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