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전하는 임채욱 사진가를 만나다 !”

사진가 임채욱.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인지 사진인지 분간을 어렵게 한다.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이게 사진이란 것을 알면 놀라게 된다.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전하는 그의 작품이 최근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The Prudential Eye Awards) 사진 부문에 선정되었다.
이에 본보에선 임채욱 사진가를 만나 그의 최근 작품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 임채욱 사진가


▲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 사진 부문에 선정된 임채욱 사진가의 설악산(상)과 덕유산(하)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고 들었는데, 사진을 하게 된 계기는?
“처음에는 동양화가로서 길을 걷고자 동양화를 전공했습니다. 특히 산수화에 관심이 많았기에 우리나라 산을 제대로 표현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산수화를 그리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산에서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작업실에선 수많은 사진과 스케치를 보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그림으로는 제가 의도한 바를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산에 올라 안개낀 풍경을 보니 마치 한폭의 그림 같았습니다. ‘자연이 그려놓은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까? 그림으로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대상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생동감은 제대로 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붓을 내려놓고 카메라와 사진이라는 새로운 도구로 저의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제가 보고 느낀 감정과 생동감을 적시에 담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위대한 풍경을 찍으면서 저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이죠.”

요즘은 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한국의 산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산이 가장 훌륭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표현한 작품 중에는 그림은 물론 사진작품에도 산수화를 비롯해 산을 소재로 한 것이 가장 많습니다. 특히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한국의 미를 표현함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산수화는 세속을 탈피한 은둔생활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산은 자연이 만든 편안한 공간입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현대인의 쉼터이자 잡념을 털고 오는 공간입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이 들어도 산에 오른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의 산을 표현하는 것은 한국인을 표현하는 것이고 한국인의 정서를 나타내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제가 산에서 느낀 한국의 정서를 사진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사진이라기보다 마치 동양화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작업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기존 인화지로는 제가 담고 싶은 느낌을 전달할 수 없기에 용지 제작업체에서 특수 제작한 한지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지에 대한 관심이 커서 이전부터 한지에 대한 연구를 해왔습니다. 한지로 사진을 출력하면 은은한 색의 표현이 가능하고 한지가 가진 자연스런 결들로 선의 표현도 날카롭기보다 부드러운 느낌을 줍니다.
저는 동양화를 전공했고 수묵화를 그려본 사람이기에 사진으로도 수묵화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수묵화의 붓으로 그린 듯한 필선을 드러내고 동양화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과 여백의 미를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이 할 수 없는 것을 서로 보완하고 각각의 장점은 더함으로써 사진을 통해 ‘진경산수화’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진촬영 장소는 어떻게 선정하는지?
“설악산, 북한산 등 다양한 장소에 가지만 주로 인왕산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왕산은 한국 산수화의 걸작인 ‘진경산수화’의 배경이자 뿌리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왕산은 동양화를 전공한 제게는 특별한 곳이자 애착이 가는 산입니다. 사진 작업을 하면서 인왕산의 모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사진을 촬영하며 기억에 남는 장소나 일화가 있다면?
“설악산 울산바위에서 작업하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진 촬영 중 신발 끈이 풀리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앞니 두 개가 부러지기도 했고, 또 한 번은 휴대폰을 잃어버려 곤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촬영한 울산바위 사진이 후에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 사진부문에 선정, 전시되면서 ‘전화위복’이란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크기와 형식, 비율 등은 어떻게 결정하나?
“크기와 비율, 형식 등에 구애받지 않고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혼용해서 자유롭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메라 장인에게 의뢰해 만든 단 1대 밖에 없는 필름 카메라로 파노라마 사진을 주로 작업합니다. 나무와 쇠 그리고 리노프 렌즈로 이뤄진 투박한 필름 카메라지만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날씨 변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맑은 날씨보다 비나 눈이 온 직후가 촬영하기에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는 운해의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생동감 있는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영국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 사진 부문 작가로 선정되었는데,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설악산과 덕유산을 담은 제 사진은 한국의 전통적인 느낌을 강조한 사진이라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동양화와 한국의 미를 표현한 작품에 대해 큰 호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정작가 전시회가 싱가포르 비즈니스 지구인 선텍시티(Suntec City)에서 지난 1월17일부터 2월5일까지 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사진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진가들이 자신의 독창성을 가지고 작업을 했으면 합니다. 기존 작업 스타일만 고수하고, 따라하는 경향이 많다보니 사진이 패턴화 되고 진부한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것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서 외국의 작가, 문화, 예술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한국 사진의 미래를 위해선 한국의 과거와 전통의 뿌리를 알고 한국의 미를 제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의 미를 갖고 해외로 나간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사진가들이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에만 관심을 갖기보다 사진을 통해 삶을 이야기 하는 작업을 해나갔으면 합니다. 저는 사진가의 삶 이전에 동양화가로서의 다른 삶을 살아봤습니다. 그런 경험들이 제가 사진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사진을 통해 삶을 이야기해 나가고 싶습니다.”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란?
프루덴셜 아이 어워드(The Prudential Eye Awards)는 2009년을 시작으로 설치, 그림, 사진, 조각, 디지털 및 비디오 등 5개 분야에서의 아시아 작가들을 선정해 작품 전시와 함께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선정된 작가들중 종합 우승자를 가려 상금 수여와 함께 사치 갤러리(Saatchi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열수 있는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사치 갤러리는 영국 첼시에 위치한 사설 미술관으로써 죽음에 대한 성찰로 충격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데미안 허스트와 자신의 거친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트레이시 에민과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발굴했다.

인터뷰 / 오수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