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통해 한국전쟁이 남긴 산유물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고찰을 수행하는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용석 작가를 만나다

- ‘동두천 기념사진’, ‘매향리 풍경’에 이은 세 번째 한국전쟁 프로젝트 ‘한국전쟁 기념비’, 11월28일부터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전시 -

한국전쟁이 남긴 산유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분단된 국토가 그러하고, 북한의 핵실험 및 기타 군사적 행동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현실이 그러하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전쟁 세대들은 이미 고희를 훌쩍 넘기고, ‘기지촌’과 같은 전쟁 산유물을 모르는 10대들도 허다하다. 이제 고작 반세기를 조금 넘긴 민족의 대참사가 사람들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아픔을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용석은 지난 1980년대부터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재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치열했던 한국전쟁을 대변이라도 하는 그럴듯한 사진, 영상자료 하나 없는 이 시점에, 강용석 작가의 작품은 쓰라린 역사적 고통을 뛰어넘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대한민국 국민 가슴에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백제예술대학 사진과 교수이며, ‘매향리 풍경’, ‘동두천 기념사진’ 등을 발표해 한국전쟁을 재조명하는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강용석 사진가를 만나보았다. - 편집자 주 -

▲ ‘동두천 기념사진’, ‘매향리 풍경’ 등 한국전쟁이 남긴 산유물을 재조명하는 강용석 다큐멘터리 사진가

= ‘동두천 기념사진’이 세상에 소개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2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 한국전쟁에 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 초는 역사적 의문들로 인한 학생 운동이 빈번하던 때로, 이를 사진으로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이태원에 빈번하게 왕래하면서 미국이 겉으로 사회적, 정치적으로 한국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한국전쟁을 미뤄볼 때 실상 이것은 왜곡된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기지촌 근처에서 2년간 사진작업을 했고, 1984년에 미군들이 드나드는 술집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것이 ‘동두천 기념사진’ 시리즈였죠. 한국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로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인 문제나 역사적 흐름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자는 의도로 동두천 사진에 이어 ‘매향리 풍경’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최근에 전시한 ‘한국전쟁 기념비’도 같은 맥락입니다.”

= 동두천이나 매향리가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곳이 아닙니다. 혹자는 ‘동두천이 왜?’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과거의 아픈 역사가 잊혀졌다는 의미가 될까요?
“시대가 바뀌니까 사회적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변하게 되는 거죠. 제가 작업하던 1980년대는 개인의 삶도, 사회적 상황도 모두 절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젊은 세대 역시 사회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환경이 자연스럽게 젊은이들이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민주주의와 운동권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민주화보다 삶의 여유로움과 경제적 풍요로움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젊은 대학생만 봐도 이제는 사회적 문제보다 개인적인 일상을 중시합니다. 최근 젊은 사진작가 대부분이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시대적인 흐름이지요.”

= 백제예술대학 사진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나요?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학생들이 사진 소재를 정하고 표현하는 것에 일체 제약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 진리 즉, 역사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역사적 통찰이나 사회의식이 정립되지 않은 채 사회를 바라보면 편협하고, 왜곡된 시야로 바라 볼 수밖에 없으므로 역사와 사회의식은 강제적으로라도 학습을 통해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사진가는 언론과 달리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기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표출해야 합니다. 또 사회를 바라보는 안목이 다큐멘터리는 너무 객관적이지 않으며 작가의 창의적인 요소가 가미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단순한 기록으로 끝나버리죠. 사실, 다큐멘터리는 모순된 장르입니다. 순간을 잡아내는 기록적인 면은 사진의 본질을 따르면서, 이를 장르화 시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죠. 기록적인 다큐멘터리보다는 사회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투영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겨야 합니다. 그것이 설득력이 있으면 좋은 사진이고, 편협하거나 너무 주관적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얻기 어렵게 되죠.”


▲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용석 작가의 ‘한국전쟁 기념비’사진전이 11월28일부터 2010년 2월20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다.

= 사진을 배우는 많은 학생들이 다큐멘터리 사진가를 꿈꿉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도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사진 장르를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 관심 분야에 좌우됩니다. 다큐멘터리는 일종의 형식이므로 굳이 그것을 채택해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 정도와 그 관심사에 대한 인문학적 수양이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필수 사항일 것입니다. 인문학적 수양을 쌓지 않으면 개인적 또는 사회적 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수양들은 비단 사진만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다큐멘터리를 접목하는데 필요합니다. 전문가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공부해야만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요.”

= ‘동두천 기념사진’과 ‘매향리 풍경’에 이은 3번째 시리즈 ‘한국전쟁 기념비’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한국전쟁 기념비’는 한국전쟁 프로젝트의 세 번째 시리즈입니다. 2003년부터 조금씩 큰 틀을 만들었고,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전국적으로 한국전쟁의 기념비, 승전비, 패전비 등이 산재해 있습니다. 비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거나 조형물이 함께 세워져 있는 곳도 있죠. 용산전쟁기념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 전쟁박물관은 한국전쟁의 대표적인 기념비입니다. 이렇게 전국의 기념비를 찾아다닌 것은 이를 통해 한국전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기념비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조명하기 위함입니다. 현재 한반도는 휴전상태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념비는 승전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물론 소규모 지역전투 차원에서 보면 승전비가 맞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어패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싶은 마음에서 세 번째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역사학자와는 다르게 한국전쟁을 재조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쟁 기념비’ 사진전은 11월28일부터 내년 2월20일까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립니다.”

= 향후 작업 계획과 방향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십시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한국전쟁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형태로 보여지는 전후의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조명할 것입니다. 아직도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주제 자체가 조금 지루한 주제이긴 하지만, 잊혀지고 묻혀서는 안 될 우리 역사임이 분명하고, 또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회고할 주제이므로 더욱 전념할 계획입니다.”

인터뷰 / 김재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