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살시리즈 ‘Why’에 이어 ‘Wings of Desire’로 환생한 김소희 작가를 만나다 -

“스스로 탐구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겁니다”

‘자살’에 대한 냉소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시리도록 차갑고, 동시에 가슴 속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why’를 선보였던 김소희 작가. 자살을 주제로 한 ‘why’시리즈의 초대 엽서와 갤러리에서 본 그녀의 작품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 묘한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강렬하면서도 꿈꾸는 것 같은 몽환적 분위기의 흑백사진 속 주인공은 위태로운 모습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구체적이지 않은 ‘자살’에 대한 쓸쓸한 시선의 한 자락을 강조하고 있었다. 더욱이 작품들이 이제 막 20대 중반을 넘긴 여성작가의 셀프 포트레이트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묘한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최근엔 천사의 환생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시리즈 ‘Wings of Desire’를 선보여 범상치 않은 작가관을 보여 준 김소희 작가를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편집자 주 -

▲ 자살시리즈 ‘Why’와 ‘Wings of Desire’로 2008 사진비평상을 수상한 김소희 작가

혼란과 불안의 현실, 수없이 죽는 자신을 지켜보는 자아 ‘why’
작가가 주제를 정할 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당시에 처한 작가의 상황일 것이다. 자살이 하고 싶었던 걸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김소희는 개인적인 혼란과 불안을 겪었다고 했다. 자살이 하고 싶었고, 그럴 때 마다 ‘사진에 죽음을 담아 보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3년여의 시간이 흘러 ‘why’가 만들어졌고 작가는 작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끝난 작업과 첫 개인전. 김소희는 작업이 끝난 후 ‘자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의 작품과 갤러리의 관객들을 접하고 잡지와 여러 미디어에 실린 ‘why’에 대한 글들을 보면서 또 다른 ‘why’시리즈의 연속된 생활을 경험하기에 이른다.
“‘why’ 작업이 끝난 후 문득 컴퓨터를 보니 바탕화면이 온통 자살에 관한 것들로 가득했어요. 미쳐서 진짜 자살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지요. 자살은 너무나 흔한 단어인데,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것에 대한 아이러니를 풀어보고 싶었어요. 아직까지 화가에 대한 동경이 남아 있어서인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하다 보니 회화적인 느낌도 들어간 것 같아요. 프란체스카 우드먼의 작품에서 여러 가지 느낌을 받았고, 모델일 때 죽고 작가일 때 살아있는, 한순간을 살면서 두 가지를 다 경험하는 것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작업하는 동안 수십, 수백 번 죽었고, 또 그 수백 번의 죽음을 지켜봤어요.”
작가는 지난 3년여의 과정을 ‘쉽지 않은 작업, 하루에도 몇 번씩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고, 옷에 매일 피가 묻어 있고, 하루 종일 자살이야기 속에서 생활하며, 일과의 끝에서 작업을 정리하는 과정도 자살 속에서였다’고 회상했다.

▲ 김소희 작가의 작품, ‘Wings of Desire’ 中

영원한 삶은 없다. 영원한 죽음도 없지 않을까? ‘Wings of Desire’
김소희의 작품들은 시간과 시대의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첫 작업인 ‘why’가 오랜 전생의 흑백 이미지 속 기억이기 때문에 리트로 스타일의 흑백사진들로 구성됐다면, 두 번째 ‘Wings of Desire’는 아날로그의 느낌을 살린 컬러 톤의 사진들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죽음, 환생, 또다시 죽음과 삶을 그리는 시대적, 시간적 연속성에서 알 수 없는 신비감마저 들게 한다. “영원한 삶이 없다면 영원한 죽음도 없지 않을까요? 삶의 끝자락이 죽음이라면, 죽음의 끝자락은 환생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작업이 바로 ‘Wings of Desire’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정말 많이 슬펐고 힘들었죠.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이 끝이 아닐 거라 생각했어요. ‘지상에서의 끝이 죽음이라면, 천국에서의 끝은 환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믿고 싶기도 했고요.”
김소희는 역시 셀프 포트레이트로 자신의 전생을 통한 ‘삶과 죽음’에 대해 묻고 있다. 자살을 선택한 인간이 천사로 재탄생된 후 겪는 혼란과 고통, 그 속에서 다시 인간이 되길 바라는 과정 속에서 철저히 인간 세계 속에 머물러 있지만 결국 천사 또한 자살을 선택하며, 현재의 작가 자신인 ‘김소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김소희는 이 작업을 통해서 ‘죽음은 태어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삶을 살다가 자살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며, 죽음 뒤에 또 다른 삶과 그 삶 안에서 고통은 반복된다는 것을 ‘Wings of Desire’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사진의 중심, 프랑스 파리로 향하다
상명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현재 샌프란시스코 Academy of Art Unive rsity Photography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는 올해 대학원 졸업 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갈 계획이다. 무엇보다 사진의 중심인 파리에서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다시 한 번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오겠다는 것이 이유다.
‘정직하게 사진을 찍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는 김소희는 사진은 단순히 셔터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찍기 전에 많은 생각과 고뇌를 한 결과물 이라며, 작품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이전에 쉽게 찍고 화려한 글과 말로 그럴듯한 해석을 붙여 사진을 알리는 그저 그런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채찍질 한다. 정치, 사회 등 다방면에서 공부를 많이 해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며, 공부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지난 8월에 ‘Wings of Desire’ 개인전을 마치고 프랑스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떠난 그녀의 세 번째 작업은 Wings of Desi re에서 자살한 천사가 작가 자신인 ‘김소희’로 재탄생하면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첫 개인전에서 큐레이터가 ‘팔기 위한 사진을 찍으면 끝이다’라는 말을 해주셨어요. 흔한 말이지만 너무 공감했고, 하고 싶은 작품을 즐겁게 하는 게 작가의 솔직함을 작품에 나타낼 수 있는 길인 것 같아요. 세 번째 작업은 현재의 내 모습을 찍으면서 지금까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임하려고 해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할 때 정체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작업할 겁니다. 그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 천천히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겠다는 김소희의 작업에서 과연 어떤 사진을 보여줄지, 어떻게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표현해 나갈지 기다려진다.

To 사진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작가가 하고 싶은 작품을 즐겁게 하는 것이 작가의 솔직함을 작품에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무엇을 찍고 싶은지, 어떤 것을 찍고 싶은지 계속 스스로에게 반문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면, 결코 답이 나오지 않거든요. 어쩌다 잘 찍힌 사진 한 장이 있다고 해서, 또 그냥 그런 사진을 화려하게 포장할 말과 글재주가 있다고 해서 ‘작가’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니까요.
From 김소희 작가

취재 / 김재일 기자